정치의식의 일면으로 신소설에 투영되었다. 그러나 신소설의 자주독립의 이념은 그렇게 철저하지 못했다. 신소설에 등장한 주인공의 행적은 친일적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일본은 우리 나라의 개화에 유익한 존재라는 관념을 암암리에 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직의 <혈의 누>가 대표적이다.
신소설
이인직은 1913년 「혈의누」 하편에 해당하는「모란봉(牡丹峰)」을 <<매일신보>>에 연재한 바 있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1』, 민음사, 2002, p.127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인직은 당시를 대표한 신소설 작가이다. 1900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일본의 정치소설을
정치적 기사와 소설을 발행하다가 1917년 11월 신경통으로 총독부 의원이 입원하여, 그 월 25일에 사망했다. 다지리 히로유끼,『이인직연구』, 국학자료원, 2006, p.27~41
2. 신소설 형식론
(1) 실증적인 측면에서 본 신소설로서의 ‘血의 淚’
이인직의 ‘혈의 누’는 확대된 장면 묘사, 작품 서두의
소설과는 다른 형태의 소설을 발표하게 되면서 신소설은 대체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지칭하게 된다. 신소설에서 서사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반으로 구조화하고, 하나의 특정한 형식으로 구체화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일상의 언어를 담론의 형식
신소설이란 말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던 것인데, 1906년 ‘대한매일신보’의 광고에 처음 등장하였고 이듬해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서 ‘신소설혈의 누’라고 표지에 기재함에 따라 이후부터 보편적이게 사용되어졌다.
최초의 신소설 작가이자 대표적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소설, 혹
소설작품들을 말한다. 신소설이란 말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던 것인데, 1906년 ‘대한매일신보’의 광고에 처음 등장하였고 이듬해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서 ‘신소설혈의 누’라고 표지에 기재함에 따라 이후부터 보편적이게 사용되어졌다.
이인직이 1906년 11월 26일에 발표한 장편
신소설신소설이란 말은 1906년『만세보』에 연재되었던 이인직의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발간될 때 이 명칭을 붙인 데서 유래한다.
과 역사전기소설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견지함으로써 민족적 역량을 배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애국계몽운동의 이념에 부응
강조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은 어찌 보면 우연의 우연성이 지각되지 않은/못한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소설 일반에 우연이 미만하고 이광수의 『무정이나』 1920년대 중반의 소설에서도 우연을 부정적으로 의식하고 배제하려는 시도를 찾기 어려운 점을 염두에 두면, 신소설
정치적 공공영역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박탈되고, 10년 이상 지속되던 계몽의 기획이 하루아침에 근거를 상실해 버리고, 정치적 권리의 부재상황 속에서 노예를 자기인식의 표상으로 삼아야 하는 경우라면, 문학으로 대변되는 미학적 소통양식의 함의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근대문학사
정치의 복합적인 성격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에 이르는 한․일 양국의 정치소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던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나타난 양국의 문학은 당대의 사회